A형 간염은 흔히 위생이나 음식 문제로 발생하는 급성 간질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는 도시 기반 시설, 공공 보건 정책, 백신 접근성, 식품 유통 시스템의 취약성 등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사회 질병입니다. 단순한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현대 사회 시스템의 공백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는 관점에서 A형 간염을 재조명합니다.
1. A형간염의 위험성
A형 간염은 소위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리며, 위생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발생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실제 감염 구조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현대 도시 안에서도 위생 불균형은 분명히 존재하며, 빈곤 계층, 외국인 노동자, 고시원 거주자, 노숙인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집단에서 A형 간염의 유병률은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공공 화장실의 위생 상태, 음식 취급자의 손 씻기 문화, 대중 급식소의 위생 교육 수준은 계층 간 명확한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또한 20~30대 성인 중 상당수가 A형 간염에 대한 면역이 없는데, 이는 어린 시절 위생 환경이 개선되어 자연 감염이 사라졌지만, 백신 접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 음식, 물, 밀집 생활 환경을 통해 집단 감염에 쉽게 노출됩니다. 이처럼 A형 간염은 단순히 ‘깨끗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도시 내 보건 안전망의 불균형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며 감염이 구조화되는 현상입니다. 이는 감염병이 단지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 분배 방식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2. 백신
A형 간염은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감염병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백신이 ‘누구에게, 어떻게, 언제’ 제공되는지는 매우 불균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A형 간염 백신이 2015년 이후 영유아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되었지만, 이전 세대, 특히 20~40대 성인은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1980~1990년대 출생자들은 A형 간염에 면역이 없는 상태로 성인이 되었고, 이 세대가 사회 활동이 가장 왕성한 나이대에 해당하면서 대규모 유행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백신 가격이 부담스러운 계층은 자비로 접종을 받기 어렵습니다. 2회 접종에 10만 원이 넘는 비용은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되는 수준입니다. 기업 단위나 병원 종사자, 군 장병에게는 단체로 접종이 진행되는 반면, 일반 자영업자,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정보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의료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백신 정책이 구조적으로 계층 차별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방 가능한 감염병’이라는 정의는 모든 계층에 동일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만 유효합니다.
3. 식품 위생
A형 간염은 식수와 음식물을 통해 감염되며, 특히 익히지 않은 조개류, 해산물, 급식용 가공 식자재 등이 감염원으로 자주 지목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조리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내 식자재 유통 시스템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갖고 있어, 식품의 최종 제공자가 원재료의 생산 및 가공 위생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A형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냉동 조개가 해외에서 수입되어 전국 급식소에 납품되는 경우, 단 한 번의 오염이 수십만 명에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식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하청·도매·유통 업체 간 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염 식품 회수나 경고 시스템이 너무 늦게 작동됩니다. 또한 외식업 종사자의 감염 여부나 손 씻기 위생 교육은 개별 업장의 책임에 맡겨져 있으며, 음식 취급자 본인이 감염자일 경우에도 이를 통보하거나 검사받을 제도적 장치가 부족합니다. A형 간염의 반복적인 확산은 개개인의 위생 문제 이전에, 식품 유통 구조의 감염 차단 기능 부재라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감염병은 무증상 상태에서도 전파가 가능한데, 이 구조는 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4. 젊은층
A형 간염은 대개 자연 회복이 가능하며, 치명률도 낮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치명적인 정책 착각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인 감염자는 소아 감염자에 비해 증상이 더 심하고, 간 기능 이상, 황달, 전신 피로, 식욕부진, 간염성 간부전 등으로 입원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20~30대 A형 간염 환자 중 일부는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간기능 저하를 경험합니다. 더 큰 문제는 고령자, 간질환 보유자, B형/C형 간염 이력이 있는 사람이 A형 간염에 감염될 경우 치명적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간부전, 혼수 상태,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A형 간염이 ‘회복되는 병’,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병’으로 오해되고 있어, 백신 접종이나 감염 예방 행동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또한 감염자 중 일부는 자신이 A형 간염인 줄도 모른 채 일상생활을 이어가면서 무증상 전파자로 기능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젊은 층이 대규모 감염망의 핵심 확산 매개체가 됩니다. A형 간염은 가벼운 질환이 아닙니다. ‘경미한 감염’이라는 사회적 오해 자체가 가장 큰 위험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