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단지 신체에 발생한 병리학적 세포 이상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는 진단 이후부터 환자와 가족, 의료진, 사회 시스템, 윤리적 결정까지 모든 층위에서 사회 전체의 작동 방식을 시험하는 총체적 질병입니다.
1. 암환자의 사회 복귀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암 생존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완치’ 이후의 삶이 진정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암 치료 후 많은 생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직장, 사회, 가정에서 격리되는 이차적 상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채용이나 승진에서 배제되는 사례, 보험 가입 거부, 지속적인 피로로 인해 정규 노동 복귀가 어려운 상황 등은 암 생존자의 삶에 새로운 벽이 됩니다. 또한 신체적으로는 완치되었더라도, 치료 과정에서 겪은 외모 변화, 장기 기능 저하, 인지기능 저하(‘케모 브레인’) 등은 사회 활동에 큰 장애가 됩니다. 문제는 암 생존자에 대한 복지나 정책이 여전히 ‘환자’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병원 내 치료가 끝나면 공적 지원이나 사회적 관심도 함께 종료되며, 완치자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처럼 취급되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진정한 암 치료는 병이 사라진 이후, 삶이 다시 연결되는 지점에서 완성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생존 이후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치료 중심의 일방 통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2. 임상시험
암 치료에서 임상시험은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기존 치료법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나 재발 환자의 경우, 신약이나 신기술을 접할 유일한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상시험 참여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와 정보 비대칭이 얽힌 복잡한 선택지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서 어떤 임상시험이 가능한지, 그것이 기존 치료보다 어떤 확률을 갖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결정합니다. 또한 일부 임상시험은 **무작위 배정(RCT)**을 포함해 위약(플라시보)을 투여하는 구조를 가지며, 환자는 자신의 치료가 실제 약물인지 위약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임상시험 참여 자체가 의료비를 절감하는 ‘경제적 동기’로 작동하는 사례도 있으며, 이는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불균형한 참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정보 접근성과 의료진의 소통 방식, 환자의 결정권 보장 등은 여전히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큽니다. 임상시험은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위한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 환자는 실험 대상이 아닌 권리를 가진 인간이어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구조적 장치가 함께 따라야 합니다.
3. 항암 신약
현대 의학은 놀라운 속도로 항암 신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면역항암제, 표적 치료제, CAR-T 세포 치료 등은 기존 항암제보다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치료제들은 대부분 1회 수백만 원, 연간 수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일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거나, 선별급여로 환자가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결국 치료의 선택은 생명과 비용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게 되며, 재정 여력이 없는 환자일수록 ‘선택권’이 아니라 ‘포기’를 강요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제약사의 가격 책정 구조는 ‘연구개발비 회수’라는 명분 아래 시장 독점 상태에서의 자의적 설정이 가능하며, 국가의 약가 협상력도 제한적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돈이 있어야 생명을 살 수 있는 구조’를 강화시키고 있으며, 공공의료 시스템은 점점 민영화된 기술 치료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극화 상태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건 평등은 약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그 약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4. 치료 공간
암 치료는 단지 약물과 수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자가 머무는 공간과 그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회복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폐쇄적이고 긴장감이 감도는 병원 환경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며, 이는 우울감, 스트레스, 불면,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등 장시간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 환자가 느끼는 공간의 온도, 조명, 소음, 냄새, 동선 등이 치료에 대한 감정적 피로감을 키우는 요인이 됩니다. 반대로 자연 채광이 잘 드는 병실, 조용한 대기실, 환자 중심으로 설계된 진료실은 불안감을 낮추고 치료 순응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몇몇 병원은 이미 힐링 가든, 음악 요법 공간, 암환자 전용 휴게 공간 등을 도입하며 병원 환경을 개선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병원은 의료진 편의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암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약만이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체력도 회복시킬 수 있는 환경입니다. 암을 치료하는 공간은 기능을 넘어, 회복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암 치료는 신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를 조율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질병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의료 시스템이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