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influenza)은 감기처럼 흔하게 여겨집니다. 매년 유행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익숙한데요. 그러나 독감이 실제로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유발합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 소아, 만성질환자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급성 바이러스성 질환이 독감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질환이 매년 겨울철 유행과 함께 반복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감기 걸렸다 또는 독감 걸렸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독감 기준은 증상만으로 구별하기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유행시기에 유행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독감이라고 판단하기도 하죠. 이런 독감에 취약한 대상자들은 꼭 백신을 맞게 되는데 이 백신은 세계 감시 체계 하에 제약사들이 매년 백신 개발 과정을 거치고 출시되는 형태입니다. 독감에 걸리면 치료제가 항바이러스제인데 이는 내성의 문제도 있으니 미리 예방접종을 맞는 것을 권장합니다.
1. 독감 기준
독감의 진단은 단순히 증상만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감기인지 독감인지 구분하기 어렵죠. 독감 기준은 무엇일까요? 보통 독감은 갑작스러운 고열, 근육통, 기침, 인후통, 피로 등을 동반합니다. 물론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예: RSV, 코로나19, 아데노바이러스)도 비슷한 증상들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래도 독감의 경우 감기 증상이 더 심하고 뚜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고령자나 소아, 면역저하자의 경우 증상이 비정형적으로 나타나며 감별 진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진단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신속항원검사(Rapid Influenza Diagnostic Test, RIDT)입니다. 이 검사는 약 15분 안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민감도가 낮아 위음성(false negative)이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바이러스 배출량이 적은 감염 초기나 회복기에는 양성률이 떨어집니다. 보다 정확한 방법은 실시간 역전사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방식입니다. RT-PCR은 바이러스의 RNA를 증폭하여 검출하며, 높은 민감도와 특이도를 자랑합니다. 다만 검사 비용이 높고, 검사 시간이 오래 걸리며, 장비와 인력이 필요한 병원에서만 시행 가능합니다. 사실 일반 동네 병원에서는 이렇게까지 검사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의료 현장에서는 두 가지 검사 결과를 임상 증상, 지역 유행 상황, 환자의 위험군 여부와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독감으로 최종 진단합니다. 보통 유행 시기에는 진단 없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내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2. 항바이러스제
독감 치료는 일반적으로 증상 완화를 위한 보존적 치료가 주된 치료입니다. 그러나 고위험군이나 중증 진행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는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게 됩니다. 현재 대표적인 항바이러스제는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자나미비르(Zanamivir), 페라미비르(Peramivir), 발록사비르(Baloxavir marboxil) 등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오셀타미비르는 복용 편의성이 높고 경구제형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은 투여 시점이 중요합니다. 발병 후 48시간 이내에 복용을 시작해야 최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늦어질수록 회복기간 단축 효과가 떨어집니다. 자나미비르는 흡입 제형으로 폐에 직접 작용합니다. 그러나 호흡기 질환자에게는 흡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페라미비르는 정맥주사로 투여되어 병원에서의 중등도 이상 환자 치료에 활용됩니다. 최근에는 신개념 약제인 발록사비르가 등장했는데, 이는 단 1회 복용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바이러스제 사용에는 내성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H1N1 독감 유행 당시 오셀타미비르 내성 바이러스가 다수 보고되었고, 그로 인해 약제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약물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공공의료 정책과 연계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항바이러스제의 불필요한 사용을 억제하고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결국 항바이러스제는 마치 항생제처럼 필요한 시점에 정확한 진단과 함께 사용되어야 합니다.
3. 백신 개발
독감 바이러스는 대표적인 고변이성 바이러스입니다. 특히 A형 인플루엔자는 항원 대변이(antigenic shift)와 항원 소변이(antigenic drift)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전적 구조를 바꿔 나갑니다. 이로 인해 백신의 효과가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기존 백신으로는 변이된 항원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백신은 보통 3가(2개의 A형 + 1개의 B형) 또는 4가(2개의 A형 + 2개의 B형) 백신으로 개발됩니다. 이 백신 개발 전에 WHO 산하 세계 인플루엔자 감시·대응 시스템(GISRS)에서 매년 2회, 북반구와 남반구에 각각 적합한 바이러스주를 선정합니다. 이 과정은 100개국 이상 140여 개 기관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유행 6개월 전에 제조사에 전달되어 백신이 생산됩니다. 하지만 백신주 예측과 실제 유행 바이러스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예방 효과가 30~40%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측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항상 일치할 수는 없겠죠? 즉 독감 백신이 완벽한 방패 역할을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사회적 감염 확산을 낮추고 고위험군 중증화를 예방하기 위한 집단 면역 도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mRNA 기반 인플루엔자 백신, 범용 독감 백신(universal flu vaccine), 바이러스 벡터 기반 백신 등 차세대 백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에는 변이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면역을 유도하는 백신이 상용화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출처 : WHO
4. 세계 감시 체계
독감은 앞서 말했듯 변성이 많기 때문에 항체가 없습니다. 따라서 한 번 발생하면 대유행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 감시 체계가 필요합니다. 하루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사회에서 독감은 공공재로서의 감염병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WHO는 이를 인식하고 앞서 언급한 GISRS를 통해 전 세계 바이러스 감시·분석·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GISRS는 참여국의 보건 당국, 민간 연구기관, 바이러스 분석 실험실 등으로 구성된 거대 네트워크입니다. 여기에서는 매년 수십만 건의 바이러스 샘플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유행주 예측뿐 아니라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조기 탐지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매년 제약사에서 백신을 만들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시 국립감염병연구소, 질병관리청, 권역별 감염병 연구소를 통해 WHO와 자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독감 유행 시기에는 국가독감감시체계(KISS, Korea Influenza Surveillance Scheme)를 운영합니다. 이 체계는 지역 병의원, 학교, 요양시설 등에서 환자 발생 데이터를 수집하여 질병청이 실시간 대응 및 경보 체계를 발동하는 데 활용됩니다. 또한 독감 대유행 시에는 국가 간 백신·항바이러스제 공동 비축, 생산 기술 공유, 공공 연구소 간 협업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