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은 흔한 만성질환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생활습관의 문제로 축소되기에는 그 파급력과 복잡성이 매우 큽니다. 당뇨병은 의료비 지출, 복지 정책, 산업계와 기술계,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까지 깊숙이 연결되어 있으며, 현대사회가 직면한 복합 구조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질병입니다. 본 글에서는 당뇨병을 단순한 개인의 병이 아닌, 사회 구조와 정책의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1. 당뇨병과 공공의료
당뇨병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꾸준히 환자 수가 증가하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이지만, 공공의료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응급 질환’으로 간주되며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응급 처치 중심, 급성질환 중심으로 설계된 현행 공공의료 인프라가 만성질환 관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입니다. 보건소와 공공의료기관은 당뇨 관리를 위한 상담, 검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환자 1인당 관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일회성 진단 중심의 서비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당뇨병은 ‘눈에 띄는 증상’보다는 점진적인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질환이기 때문에, 공공의료 재정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응급 질환이나 전염병과 같은 즉각적 사회 비용이 보이는 질환에 비해, 당뇨병은 ‘장기적 부담’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단기적 예산 편성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결국 이는 당뇨병이 ‘관리 가능한 질병’이라는 오해와 정책적 저우선 순위가 결합된 결과이며, 향후 고령화 사회에서 공공의료체계의 전면적 재조정 없이는 의료 파산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2. 의료기록
당뇨병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단절된 진료’와 ‘분절된 의료 데이터’ 구조에 머물러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실질적인 통합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내과, 안과, 신장내과, 영양상담 등 다양한 진료과를 오가며 치료를 받지만, 각 병원의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는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중복 검사가 발생하거나 중요한 경과가 누락되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 병·의원, 보건소, 약국, 건강보험공단 등이 각각의 시스템에 환자 정보를 개별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당뇨병 관리의 핵심인 ‘지속적 추적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 단절이 치료의 비효율성만이 아니라, 합병증 발생률 증가, 의료비 낭비, 환자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의료 데이터를 연계하고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당뇨병 환자는 더 빠르고 정밀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민간 기업 중심의 헬스케어 플랫폼이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공 차원의 전국 통합 당뇨 데이터 인프라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당뇨병은 수치가 아닌 기록의 연속입니다. 이 기록이 의료 기관 간, 시스템 간 공유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결국 ‘보이지 않는 질병’을 안고 방황하게 되는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데이터 전략과 환자 중심 의료정보 시스템 개편이 시급합니다.
3. 관리 환경
당뇨병 관리는 하루하루의 식사, 운동, 약물 복용, 스트레스 조절을 요구하는 복합적 작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인의 노동 환경이 이러한 지속적 관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교대 근무, 불규칙한 식사 시간, 장시간 노동, 식당 선택의 제약,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혈당 변동 등은 직장인 당뇨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저소득 노동자일수록 자율적인 건강관리 시간이 제한되며, 잦은 야간근무나 육체노동이 당뇨병 조절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더불어 직장에서의 당뇨병에 대한 인식 부족, 식단에 대한 배려 부족, 의료시간 확보의 어려움 등은 환자 스스로 질환을 숨기거나 불완전한 자가관리에 의존하게 만드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는 단순히 직장 내 건강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을 넘어서, 노동 구조 전반이 만성질환자의 일상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당뇨병은 더 이상 병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 정책과 산업 복지 차원에서 개입해야 하는 사회 구조적 이슈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4. 외부 요인
당뇨병은 개인의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자기 책임’의 질병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식품 산업 구조, 광고 정책, 교육 제도 등 외부 환경이 질병 유발 요인으로 깊숙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공식품과 고당류 제품의 범람입니다.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상당수가 혈당 상승을 유발하는 탄수화물과 당류 중심이며, 정크푸드 광고는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됩니다. 학교 급식 또한 식품비 절감과 효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 혈당 관리와 건강한 식습관 형성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품 표시제도 역시 복잡하고 추상적이어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영양 정보를 활용하기 어렵고, 저소득층일수록 가격과 접근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건강한 식사 선택의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결국, 당뇨병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정책 설계의 실패에서 기인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예방은 개인 계몽이 아니라, 식품 정책, 광고 규제, 소비자 교육, 사회적 환경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